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탈리야 포클론스카야 (문단 편집) == 생애 == [[1980년]] [[3월 18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루한스크주|보로실로보그라드주]] 페레발스크에서 태어났으며, 열 살 때 가족을 따라 크림 주로 이사했다. 하르키우 내무[* 경찰학, 치안행정학 등을 의미한다. 원래 이 학교는 [[경찰]] 지휘관들이 교육받는 [[경찰대학]]이었다.]국립대학 예브파토리야(Евпатория)[* 크림 반도 서부의 도시.] 캠퍼스를 졸업했다. 아래에 나와있듯이 젊은 나이에 빠르게 출세했다. 2002년 대학 졸업 후 2010년까지 보조 검사, 보좌관을 차례로 역임했으며, 2010년 크림 자치 공화국 검찰청에서 차장이 되었다. 이 시절 2011년 심페로폴에서 크림 자치공화국 의회의 부의장을 지낸 루빔 아로노프(Рувим Львович Аронов)의 재판 당시 검사를 맡아 유명해졌다. 당시 아로노프는 [[갱]]집단인 '바시마키(Башмаки)'[* [[신발]]을 뜻한다. 앵클부츠.]의 소속이라고 기소되었다. 같은 해에 심페로폴(Симферополь)의 지역간 환경담당 검사를 맡게 되었다. 이로 인해 키이우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검찰청으로 전보되었다. 2013년 11월 우크라이나에서 친러 성향의 당시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하야와 [[EU]] 가입을 지지하는 대중들의 대규모 시위인 [[유로마이단]] 시위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후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오히려 러시아로의 의존을 강화하였고, 2014년 2월 18일 키이우에서 천러 우크라이나 정부가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려 75명이 사망하고 11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천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키이우에서는 시위대가 소총 무장을 시작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정치 상황은 대혼란기로 접어들었다. 한편 포클론스카야의 고향인 크림은 주민의 약 60%가 러시아계였고, 당시 우크라이나 경제 상황이 매우 안 좋았기에 우크라이나계 사람들조차 차라리 러시아에 붙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유로마이단 사태가 악화되며 우크라이나 본토가 정치적 혼란에 빠지자 크림 반도에서도 친러 시위와 반러 시위가 충돌하며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나 본토 키예프와는 다르게 크림 반도는 친러 세력이 득세하고 있었고, 이 틈을 타 2월말에는 러시아군의 지원을 받은 친러 무장단체(자경단)이 크림 반도에 침투해 정치적 거점들을 빠른 속도로 무력으로 장악했다. 2월 25일 자경단을 자처하는 친러 무장 세력들은 크림 반도 최대의 도시 [[세바스토폴]] 시청을 무력 점거하였고, 현직 세바스토폴 시장을 강제로 끌어내리고 '''러시아 국적자'''인 알렉세이 찰리(Алексей Михайлович Чалый)가 스스로 세바스토폴 시장을 자칭하며 시정을 장악했다. 세바스토폴 시장직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임명하는 관선이기 때문에 러시아인인 알렉세이 찰리의 시장 취임은 전혀 법적 정당성이 없었다. 이틀 후에는 크림 자치 공화국 정부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무장단체(자경단)에 의해 전복되었고, [[세르게이 악쇼노프]]라는 의문의 인물이 스스로 총리가 되었다. 세바스토폴 시 정부가 친러 무장세력에 의해 전복된 2월 25일에 포클론스카야는 사직서를 냈다. 그녀는 "폭도들이 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나라에서 사는 게 수치스럽다"고 표현하였다. 이 사직서의 내용은 유로마이단의 운동가가 밝혔다. 사직은 반려되었고 대신에 휴가를 받았다. 그녀는 즉시 고향이자 친러 무장단체가 사실상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크림 반도로 돌아왔다. 친러 무장단체에 의해 정부가 장악된 크림 반도는 이후 우세한 여론을 바탕으로 2014년 3월 11일에 크림 주민 투표를 거쳐 [[크림 공화국]]으로 독립했고, 며칠 후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나탈리야 포클론스카야는 신생 크림 공화국의 [[검사]]로 임용되었다. 그런데 새로 임명된 크림 공화국의 검사장이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유로마이단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검사장은 정치적 이유로 해임되었다. 이후 크림 공화국은 여섯 명의 고위 검사에게 차례로 검사장 직을 제안했으나 여섯명 모두 당시 크림 반도의 러시아 합병에 대한 정치적 부담감 때문에 검사장직을 거절하였다. 이후 포클론스카야가 이 제안을 받게 되었는데, 그녀는 이를 수락했고, 크림 공화국의 총리 세르게이 악쇼노프에 의해 검사장으로 임명되었다. 물론 최종승인은 2014년 5월 2일 러시아 연방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했다. 이때 그녀의 나이가 34세로, 상당히 젊은 나이에 한 광역자치단체의 검사 최선임으로 발탁된 파격적인 인사가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그녀의 우크라이나 검찰 권한을 몰수하였고 3월 26일엔 우크라이나 내무부 웹사이트에 범죄자(국가반역죄)로 현상 수배되었다. 아래 내용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친러 성향인 그녀는 친서방인 유로마이단 시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왔고,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를 반헌법적인 [[쿠데타]]라고 묘사하였다. 2015년 5월에는 현상수배를 내린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해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5/22/0200000000AKR20150522049300009.HTML|"잡아갈 테면 잡아가봐라"]]라고 대응했다. 2014년 5월 12일 유럽연합(EU)는 그녀를 제재 대상자로 지정했다. 이후 캐나다(6월), 일본(8월 4일) 호주(9월) 정부가 그녀를 제재 대상자로 지정했다. 2015년 6월 1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녀에게 '3급 법무 국가고문관' 직급을 부여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는 모든 공무원에 군대 계급을 부여하는 러시아 관직 제도상 '소장' 계급에 해당하며, 그녀는 러시아 역사상 최연소 여성 장성이 되었다. (2016년 9월 국회의원 당선으로 검사장을 사직할 때도 여전히 최연소 장군인 상태였다.) 2016년 8월 7일에 러시아 정보기관이 크림 반도에서 테러공격을 저지르려고 했던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정보총국의 계획을 사전에 차단했다고 한다. 2016년 9월 러시아 총선에서 제1당이자 집권 여당 [[통합 러시아당]] 소속 [[비례대표]]로 러시아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10월 13일부터 임기가 시작되었다. 일부 러시아 언론은 그녀를 차기 대선 주자로 꼽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의회는 크림 지역에서 러시아 총선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냈고, 우크라이나 검찰은 그녀를 국가반역죄로 기소했다. 2021년 10월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는 그녀는 차기 총선에 불출마한다고 밝혔고, 그녀의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 바로 다음날인 2021년 10월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그녀를 카보베르데 공화국 주재 러시아 전권대사로 임명했다. 그녀는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책을 맡겨주신 푸틴 대통령께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https://www.magazine.kim/news/articleView.html?idxno=3237|#]] 2022년 2월 2일 러시아 정부 산하 해외 원조 기관인 러시아 대외지원청Федеральное агентство по делам Содружества Независимых Государств, соотечественников, проживающих за рубежом, и по международному гуманитарному сотрудничеству (Россотрудничество)의 부국장에 취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전 후 2022년 3월 2일에는 이 전쟁을 미친 짓(madness)이라고 부르면서, 전쟁반대 성명을 공개했다. [[https://twitter.com/PoklonskayaNV/status/1499009591224459264?cxt=HHwWgICz_f7Rxs0pAAAA|#]] [[https://t.me/poklonskaya_nv/783|성명문 전문(러시아어)]] [[https://morningexpress.in/stop-the-madness-pro-russian-crimean-figure-distances-himself-from-war-in-ukraine/|#]] 또한 우크라이나, 러시아 모두 애국적이고 숭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양편 중 한 편만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라는 [[양시론]]을 펼쳤다. 2022년 3월 8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러시아의 의용군으로 헤르손주에 잠깐 참전한 것이 확인되었다.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고 현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인도적 지원활동만 펼쳤다고 한다. [[https://www.pravda.com.ua/eng/news/2022/03/8/7329458/|#]] 4월 15일에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 [[9K720 이스칸다르]] 미사일을 쏘자는 블라디미르 콘스탄티노프[* 크림반도 출신 친러 정치인으로서, 크림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크림반도의 러시아 합병을 주도한 사람 중 한 명이다.]의 말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하며 러시아 군인들이 그들의 고향으로 복귀할 것을 호소하였다. 그리고 파괴된 우크라이나의 [[인프라]]와 러시아-우크라이나간 관계를 재건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https://www.kommersant.ru/doc/5315084|#]] 당연히 양국은 현재까진 화합할 가능성이 없기에 실현 불가능한 제안이었다. 2022년 4월에는 친러진영과 러시아의 선전 상징으로 쓰이는 [[Z(군사 표식)]]에 대하여 '전사한 군인의 부모님에게 닥친 비극'을 상징한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내보였다. [[https://twitter.com/KevinRothrock/status/1516574374886887424|#]] 이 당시 인터뷰한 상대 언론인이 러시아의 마지막 자유언론이라고 칭해졌던 모스크바 공감(Ekho Moskvy)의 퇴직인원이었던 점도 포인트. 6월 13일, 푸틴 대통령의 지시로 러시아 대외지원청 부국장 직에서 해임당했다. 전쟁 반대 언행에 대한 문책이라는 설도 있지만 이 소식을 포클론스카야 본인이 직접 SNS에 알리면서 푸틴의 지지와 신뢰에 감사한다는 코멘트를 남겨, 단순히 이직하는 것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https://readovka.news/news/100669|#]]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2698989&page=1|#]]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4977374|#]] 다음날, 그의 SNS에 러시아 연방 검찰총장의 고문으로 임명됐다고 밝혔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61509410003593|#]][[https://ria.ru/20220614/poklonskaya-1795168352.htm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